金中和
1888-02-27 ~ 1972-12-12·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金龍文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중화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남 중화(中和) 사람이다. 1909년 11월경 이재명(李在明)·오복원(吳復元) 등과 서울에서 만나 이완용(李完用) 등 매국적 처단을 계획하고 11월 하순경부터 12월 상순까지 평양·서울 등에서 동지규합과 거사준비에 힘썼다. 이때 그를 이재명의 지시로 이완용의 동정을 탐지하고 12월 23일 이완용 등이 명동성당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알고 동지에게 알렸다. 그리하여 이재명이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이완용을 찔러 중상을 입힌 후 붙잡히자, 공범으로 연루 붙잡혀 경성지방법원에서 7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6년 출옥후 만주로 건너가 흑룡강성(黑龍江省) 지역의 황무지를 개간하고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조달하는 한편 독립군 양성을 위해 학교를 설립하고 송강의원(松江醫院)도 개설하여 독립운동가의 규합에 진력하였다. 1920년에는 고려혁명군(高麗革命軍) 조직에 참여하여 독립투쟁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