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瓚鎭
1897-11-27 ~ 1950-07-20·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字:贊玉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찬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6년 4월 서울에서 협우청년회(協友靑年會) 상무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7월 충청남도(忠淸南道) 공주군(公州郡)에서 수해가 일어나자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임시수해구제회를 창립하였다. 충청남도 대전(大田)의 한 의사가 사회주의자인 환자 진료를 거부하자 협우청년회 명의로 징계를 결의하고 경고문을 발송했다. 그에따라 같은 해 9월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당시 그의 나의 30세였다. 같은 해 11월 공주군 사곡면(寺谷面) 호광리(虎光里)에서 조직된 호광청년회(虎光靑年會)에 고문으로 참여하였다. 1927년 3월에는 중외일보 조치원지국에서 총무로 활동했다. 같은 해 6월 호서기자단 주최 충남북기자대회에 의안(議案) 작성 위원으로 참석하였다. 같은 해 9월 협우청년회의 대표자격으로 장충청년회(獎忠靑年會), 중앙노동(中央勞動)과 함께 3단체 연합위원회를 개최하였다. 1927년 10월 이후 중국 길림성에서 신간회 해외특파원으로 활동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21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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