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忠國
1900-07-14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충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함남 북청(北靑) 사람이다.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조국의 광복에 뜻한 바 있어 1922년 2월경 간도로 망명하였다. 그리고 동년 4월 동흥중학교(東興中學校)에 입학하여 학업에 정진하였다. 4학년 재학시인 1924년 6월경 동향인 한탁열(韓鐸烈)의 소개로 독립단에 참여한 후, 동월 12일 밤 자신이 유숙하고 있던 용정촌(龍井村) 신촌(新村) 한명서(韓明瑞)의 집에서 상해 임시정부 모연대원 허지포(許之浦)·김창준(金昌俊)과 밀의한 후 군자금을 모집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그날 밤 용정촌에서 남쪽으로 약 1리쯤 떨어져 있는, 화룡현(和龍縣) 증지사(曾智社) 신명촌(新明村) 윤위석(尹威錫)의 집에 들어가 권총으로 군자금을 제공할 것을 설득하였다. 그러나 지금 당장 돈이 없다고 하여 금월 28일까지 군자금 3백 원을 준비해 놓으라고 하였다. 그 후 몇 차례 윤위석의 집을 찾아갔으나 주인 부자는 몸을 피하고 군자금을 제공하지 않았으며 결국 김충국은 체포되고 말았다. 김충국은 1924년 11월 5일 청진(淸津)지방법원에서 징역 15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25년 1월 2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다.
199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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