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致敏
(1884)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치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김치민은 평남 순천군(順川郡) 신창면(新倉面) 숭덕리(崇德里) 출신으로 1919년 경 만주(滿洲)로 이주해 광복단(光復團)에 참여하였다. 광복단은 1920년 4월 중국 만주 안도현(安圖縣)에서 조직된 무장 독립운동 단체로 초기 단장은 이범윤(李範允)이 추대되었고 대한제국(大韓帝國)의 복벽(復辟)을 주장하였다. 주요 인사는 김성윤(金聖倫),김성극(金聖極) 등이었고 약 300명의 단원으로 편성되었으며 무기는 장총 150정과 권총 200정을 보유하였다. 군사 활동으로는 일제 기관의 파괴와 일본 경찰 사살 등의 전과를 올렸으며, 청산리전투에도 참가하였다. 김치민은 1919년 12월 평남 성천(成川)에서 일본 밀정 및 금융조합 간부 처단 활동에 참여하는 등 1920년 전후 평남 성천군,순천군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주재소 습격, 순사 처단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가 1934년 2월 경 체포되었다. 평양복심법원(平壤覆審法院)에서 소위 대정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등으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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