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鐸煥
1884-08-02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金鐸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탁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10월 서울에서 일본 경찰로 가장하여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10월 2일 김강(金剛)ㆍ한호범(韓鎬範)ㆍ이경헌(李景憲) 등과 함께 서울 평동(平洞)에서 회합하여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기로 협의하였다. 한호범ㆍ이경헌은 서울 수창동(需昌洞) 홍종욱(洪鍾郁)에게 '조선총독부 경무국 사법계 형사 김영희', '조선총독부 경무부 경부 김탁'이라고 새긴 명함을 제시하면서, "자신들은 형사ㆍ순사인데 김탁 경부의 명령이므로 동(同) 경부의 사택으로 동행하자"며 홍종욱을 김강의 집에 이르게 하였다. 김탁환 등은 홍종욱에게 '경성부 애국금수합위원(愛國金收合委員)' 사령서(辭令書)를 보이며, 자신들이 조선독립의 운동비를 모집하는 사람임을 밝히고 독립운동자금을 요청하였다. 이에 홍종욱이 한일은행 서대문출장소에 예입한 통장의 인장을 교부하여 170원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10월 4일에는 서울 공평동(公平洞) 전동여관에 묵고 있던 이남종(李南鍾)에게도 2,000원을 모집하였다. 김탁환은 1919년 10월 22일 종로경찰서에 체포된 뒤 1920년 3월 1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 및 강도죄, 가택 침입죄 등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4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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