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泰源
1896-10-17 ~ 1975-10-14·현대
이명·자·호 金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태원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이죽면(二竹面) 장계리(長溪里)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5월 상해(上海) 임시정부의 수립에 따라 임정특파원이 되어 충청북도지방에서 활동하였다. 특파원을 파견한 이유는 여러 가지 있었기 때문에 특파원의 임무도 각양각색이었다. 특히 임시정부 수립에 대한 계몽과 선전 임시정부의 정책 계몽 독립사상의 고취 연통제 및 교통국의 설치, 국내 지도자와의 협의, 독립운동 단체의 조직 정세 파악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또한 연통제 혹은 교통국의 활동 상황을 시찰하여 임시정부에 보고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을 통할하기 위하여 연통부와 교통국을 설치하여 훌륭한 효과를 거두었는데 특파원의 활동도 그 효과에서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특히 임시정부 초창기 국내의 민심을 임시정부로 집중시키는 활동은 연통제와 교통국이 설치되기 전이었으므로 특파원의 임무는 실로 중대한 것이었다. 1919년 8월에 그는 김순호(金順浩) 안교일(安敎一) 신봉균(申鳳均) 신현구(申鉉九) 유득신(劉得信) 이길용(李吉用) 등의 동지들을 규합하여 철혈단(鐵血團),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을 조직하고 단장이 되어서 독립 사상을 고취시키는 등의 항일 투쟁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9월에는 혈복단(血復團)을 조직하기도 하였으며 상해 임시정부의 공채를 팔아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광주(廣州) 수원(水源) 오산(烏山) 등지를 돌아다니는 등 활동을 하였다. 1920년 3월에는 혁신단(革新團)이라는 단체와 제휴하여 혁신공보(革新公報)를 발행하기도 하였다. 또한 4월에는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과 제휴하였다. 대한광복단은 노백린(盧伯麟) 김좌진(金佐鎭) 신현대(申鉉大) 윤홍중(尹洪重) 박성태(朴性泰) 이 현(李鉉) 등이 조직한 비밀결사 항일단체로서, 단원의 수는 수백 명에 이르렀으며, 대한 국권을 광복하기 위하여 죽음으로써 결의하고 일본을 완전히 축출하기를 천지신명께 맹세한다는 선서문을 내걸고 있는 단체이다. 1920년 5월에 김상옥(金相玉) 한 훈(韓焄) 김동순(金東淳) 등 20여 명과 함께 암살 행동반을 조직하여, 1920년 8월 미국의원단의 내한을 기회로 하여 일본 총독을 암살하고 각 관서를 파괴하여 민족의 진의를 전세계에 표명하려다가 비밀이 누설되어 한 훈(韓焄) 등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리하여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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