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泰赫
(1882-11-16)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태혁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황해도 수안군(遂安郡) 읍내에서 천교도인을 중심으로 전개된 대규모 만세운동을 주도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1919년 3월 천도교 수안교구장 안봉하(安鳳河)는 천도교인을 동원하여 독립선언서 배포와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3월 3일 거사 당일 오전 6시경 김태혁은 이영철,한청일,홍석정 등 천도교인들과 함께 수안 천도교구실 앞에 모였다. 이들은 2개의 큰 태극기를 높이 들고 만세를 부르며 헌병분견대를 향하여 행진하였다. 시위대는 헌병분견소 앞에서 조선 독립과 헌병대 철수를 강력히 요구하였고, 김태혁 등은 헌병대 사무실로 몰려가 분대장 중위에게 헌병대를 인도하라고 요구하였다. 이러한 시위는 오후에도 한 차례 더 전개되었다. 그러나 오후 시위에서 김태혁 등이 헌병분견소로 몰려가 애국 시민 석방과 헌병대 철수를 다시 요구하자, 헌병들은 무차별 사격을 가하여 시위 군중을 해산시켰다. 이때 붙잡힌 김태혁은 1920년 11월 1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소요죄로 징역 1년 3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