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泰熙
1877-10-18 ~ 1936-06-29·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李世基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태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충청북도 청주(淸州)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애국계몽운동에 참가하여 1904년에 충청북도 청주에 청남학교(淸南學校)를 설립하고 교육구국운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남형우(南亨祐) 안희제(安熙濟) 이원식(李元植) 신백우(申伯雨) 김동삼(金東三) 이시열(李時說) 박중화(朴重華) 배천택(裵天澤) 등 80여명의 동지들과 함께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신민회(新民會) 계열의 비밀 청년단체인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을 창립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3 1운동 후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이를 적극 지원하여 1920년 9월 10일 연통제(聯通制)의 충청북도 독판부(督辦府) 참사(參事)로 임명되어 군자금 모집과 독립운동 문서들의 배포 등 국내 독립운동에 진력하였다. 또한 국민회(國民會) 충청북도 지회를 조직하여 그 책임자가 되었으며, 청주청년회(淸州靑年會)를 조직하여 청년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1921년 전국의 청년회들을 연합하려는 운동에 참가하여 동지 정규택(鄭圭澤)과 함께 조선청년회연합회(朝鮮靑年會聯合會) 창립총회에 청주청년회 대표로 참석하여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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