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判用
(1887) ~ (1908)·대한제국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판용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남 합천 출신으로 1908년 경남 합천(陜川) 등지에서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 대한제국의 군대 해산 이후 해산 군인이 의병에 합류함으로써 의병부대의 전술·전략은 크게 발전하였고, 항전의 범위도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특히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의 서울진공작전 이후 의병은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거병하여 항전하였다. 당시 경상남도와 전라도 접경지대에는 전라도의 김동신부대(金東臣部隊)와 경상도의 문태서부대(文泰西部隊) 등이 전라·경상 도계(道界)를 넘나들며 활동하였다. 김판용은 1908년 4월 8일 경남 합천우편취급소(陜川郵便取扱所)를 습격하여 파괴한 의병 약 50명의 일원이었다. 이 때 합천군 순사주재소 순사 3명이 출동하여 약 1시간 동안 교전하였다. 이 전투에서 의병측은 3명이 전사하고, 5명이 부상하는 손실을 입었다. 당시 22세의 김판용은 일본경찰의 칼에 찔린 채 퇴각하다가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07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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