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豊燮
(1897) ~ (1921-06)·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풍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남 대동(大同) 사람이다. 1919년 11월 평남 대동에서 조직된 대한독립대동청년단(大韓獨立大同靑年團)의 단원으로 활약했다. 대한독립대동청년단은 대한독립광복군사령부(大韓獨立光復軍司令部) 산하의 독립군 지원단체였다. 동단은 1919년 8월에 조직된 대한국민회의 지부인 향촌회(鄕村會)로 출발하였다. 대한국민회는 북간도와 평양에 각기 별도의 조직으로 성립되었는데, 여기에서의 대한국민회는 평양을 중심으로 생겨난 것이었다. 이 단체는 기독교회를 중심으로 전국 규모의 조직으로 확대되어 갔는데, 특히 평안도 일대에서 조직이 크게 발달하였다. 그런데 1919년 11월 말 대한국민회가 일경에 발각되는 상황에서, 일제의 포위망을 피한 그와 동지들은 기존의 향촌회 조직을 발전적으로 개편하여 대한독립대동청년단을 결성하였다. 대한독립대동청년단은 투쟁방략을 강화해 가며 임시정부 및 만주 독립군과 연결되어 활동을 전개해 갔는데, 주요 활동은 군자금 모집 및 선전물의 인쇄·배포였다. 그리하여 1921년 3월에는 대동군 일대의 자산가들을 조사하여 군자금 모집활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였다. 또한 이 단체는 향후 벌어질 독립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단원 15명을 선발하여 독립군 단체에 파견하여 훈련을 쌓게 하는 등 무장 독립운동의 방법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조직이 발각되면서 일경에 붙잡힌 그는 옥고를 치르던 중 모진 고문으로 인하여 1921년 6, 7월경에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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