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必壽
1905-04-21 ~ 1972-11-23·현대
이명·자·호 金灿海, 朴惠淑, 치야노파, 최성려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필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김필수는 1926년 12월 5일 서울 낙원동에서 여성들의 대중적 교양과 조직적 훈련을 목적으로 중앙여자청년동맹(中央女子靑年同盟)을 조직하였다. 같은 해 조선공산주의청년회(朝鮮共産主義靑年會)에 가입하여 독서회와 웅변모임 등을 조직하였으며, 이 모임을 통해 청년 특히 여성 청년들에게 항일민족독립에 관한 선전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1928년 3월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 학생부 위원으로 활동하였고, 동년 7월 근우회(槿友會) 중앙집행위원(中央執行委員)으로 선출되었다. 1928년 10월 러시아로 건너가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입학하여 수학하였다. 1932년 5월 대학 졸업 후 모스크바 교외에 있는 우제르나 휴양소에서 국제노동운동에 대한 문제와 지하공작에 관계되는 기술과 지식을 배웠다. 그해 9월 국제직업동맹 중앙본부로부터 조선의 함흥과 흥남지구에서 적색노동조합을 조직하라는 비밀임무를 맡고 1933년 5월부터 함경남도 흥남(興南),함흥(咸興),원산(元山) 등을 중심으로 태평양노동조합운동과 조선공산당재건운동을 전개하였다. 김필수는 1935년 봄 흥남경찰서에 체포되어 1936년 3월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 6월을 받고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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