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弼浩
1903-08-29 ~ 미상·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필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3월 10일 오후 3시 반경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광주교(光州橋) 아래 강변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학생들은 「독립선언서」 등을 나누어주며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군중은 작은 장터로 행진하며 만세를 외쳤다. 곧이어 약 1,000여 명의 군중이 장터에는 모여들었다. 당시 김필호는 수피아여학교 학생이었다. 교사였던 박애순과 진신애(陳信愛)를 따라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그녀는 군중과 함께 만세를 외치며 장터에서 서문통(西門通)을 거쳐 광주우편국(光州郵便局)으로 행진했다. 김필호는 이 과정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9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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