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學善
1921-03-03 ~ 2009-06-09·현대
이명·자·호 徐振武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학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북 의주(義州) 사람이다.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와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의 대원으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평소 민족의식이 투철하던 김학선은 중국으로 망명하여 중국 관내 한구(漢口)·서안(西安) 등지에서 활동하던 조선의용대에 가입하여 항일전선에 참가하였다. 1938년 10월 무한(武漢)에서 건립된 조선의용대는 김원봉(金元鳳)의 지도아래 대본부와 두 개의 구대(區隊)로 구성되어 중국 관내 각처에서 대(對)일본군 선전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조선의용대는 독립운동세력의 통합에도 힘을 쏟아 1939년 기강에서 좌우합작운동을 시도하였으나 통합운동이 결렬되자,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였다. 그리하여 1940년 11월 대본부가 있던 중경에서 확대 간부회의를 개최하여 의용대의 화북진출을 결의하였다. 이에 따라 대본부의 인원과 일선 공작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의용대 대원들이 화북으로 이동하면서 조선의용대 세력은 화북과 중경으로 양분되었다. 이때 대본부의 일원으로 활동하던 김학선은 중경에 잔류하며, 1942년 7월 ‘조선의용대개편선언’에 따라 의용대가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의 1지대(支隊)로 편입되자 광복군으로 활동하였다. 조선의용대가 주축을 이룬 광복군 1지대는 사천성 중경에 본부를 설치하고, 초모공작원들을 각처에 파견하면서 세력 확대에 힘을 쏟는 한편 대일전선에 투입되어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광복군의 일원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한 뒤, 광복 후 귀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1998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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