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現洙
(1862)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현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남 덕천군(德川郡) 덕천읍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덕천군내에서 3.1운동은 1919년 3월 5일 천도교와 예수교가 연락하여 양측 교인이 모여 독립선언식을 거행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들은 곧 가두로 진출하여 태극기를 앞세우고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일본 경찰이 출동하여 주도자를 검거하자 시위대는 일단 해산하였다. 다음날인 6일 오후 시위대는 3백여 명으로 늘어나 본격적인 만세운동을 벌였다. 이날도 다수의 검거자를 내고 시위대는 일단 해산하였으나, 이들의 열기는 다음날에도 이어져 6백여 명의 시위대가 대대적인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덕천군내의 시위로 사상자는 생기지 않았으나 다수의 피검자를 내었다. 시위 후 체포된 김현수는 재판 과정에서 “국권을 회복하고 우리 집을 자주(自主)하기 위해 만세를 불렀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그는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고, 1919년 7월 21일 고등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6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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