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玄洙
1913-01-08 ~ 1950-10-20·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현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9년 6월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의 광주공립농업학교 학생들은 독서회(讀書會)를 조직하였다. 독서회는 사회과학 연구를 목적으로 조직된 비밀결사였다. 회원들을 4개 반으로 나누어 책임자 밑에 반원을 편성하고 각 반별로 사회과학을 연구하였다. 광주공립농업학교 3학년에 재학하던 김현수도 이 독서회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독서회는 같은 해 9월 해산하였다. 1929년 11월 3일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光州公立高等普通學校)와 일본인 학교인 광주중학교(光州中學校) 학생들의 격투를 계기로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가두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에 참가한 많은 학생들이 검거되었다.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와 광주공립농업학교의 독서회원들은 장석천(張錫天)·장재성(張載性) 등 전남청년연맹(全南靑年聯盟) 간부들의 지도를 받아 연합시위운동을 추진하였다. 이들은 ‘구속학생 석방’과 ‘식민지교육 철폐’ 등을 요구하는 격문을 제작하는 등 시위운동을 준비하였다. 11월 12일 수업 시작과 동시에 김현수는 앞장서 교실 밖으로 뛰쳐 나가며 학생들의 동참을 촉구했다. 이에 140여 명의 광주공립농업학교 학생들이 일제히 교문을 나와 만세를 외치고 격문을 살포하며 시위행진을 벌였다. 학생들은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 연합하여 전남사범학교(全南師範學校) 앞에서 만세를 부르며 시위운동을 전개했다. 이로 인해 체포되어 1930년 10월 1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공소하여 1931년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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