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玄洙
1914-08-11 ~ 미상·현대
이명·자·호 金汀岸, 金正煥, 湖影, 朱新華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현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33년 5월 중국 상해(上海)에 도항하여 김구의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1934년 2월 중국 낙양군관학교(洛陽軍官學校)에 입교하여 조선혁명에 관한 훈화, 군사훈련 등을 받고 1935년 4월 제1기로 졸업하였다. 1936년 1~2월쯤 상해에서 아나키즘단체인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에 가입하여 단도 및 권총 등으로 무장하고 동지 이하유(李何有), 김성청(金聖靑)과 상해 지역에서 군자금을 획득했다. 1937년 11월 11일 상해 카페에서 민족혁명당원 최지삼(崔之三)과 상해거류민회장을 일본의 주구로 지목하여 권총으로 처단하였다. 이 사건으로 1938년 2월 4일 인치되어 1938년 4월 6일 공주지방법원 대전지청 검사국에 송치되었다. 1938년 5월 20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강도(强盜)·살인미수(殺人未遂)’로 징역 10년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옥고 중이던 1939년 7월 25일 형무소 제3사 제38방에서 ‘수감자에게 좋은 식사를 제공하고, 인격적으로 대우해줄 것’을 요구했다가 1941년 8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요(騷擾)’로 징역 1년의 형을 받았다. 정부는 202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23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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