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瀅九
1879-04-10 ~ 1944-11-15·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형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강원도 이천(伊川) 사람이다. 그는 천도교인으로 1919년 3월 3일 강원도 이천군의 만세시위에 참가하는 한편 1923년에는 조선민립대학기성회(朝鮮民立大學期成會)에 참가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천은 강원도에서 가장 서북부에 위치하여 함경남도·평안남도·황해도·경기도와 접하고 있는 지역으로, 이천에 3·1운동의 소식이 전달된 것은 3월 3일 이웃의 평강(平康) 천도교구의 연락을 받으면서 였다. 평강으로부터 선언서 15매를 전달받은 이천면(伊川面) 탑리(塔里) 천도교회당의 이춘호(李春浩)는 김형구와 이경선(李京善)에게 다시 전달하여 이천군내에 선언서 배포의 임무를 부여하였다. 그리하여 김형구는 이천군내 동면·용포면(龍浦面)·판교면(板橋面) 등지에 배부하여 이천의 만세운동에 불을 당기는 역할을 하였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4월 1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그는 독립운동에의 뜻을 굽히지 않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다가, 1923년 전국적으로 민립대학설립운동이 일어날 때 이에 참가하여 조선민립대학기성회 발기인 강원도 이천지역 대표로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5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