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炯洙
1905-02-05 ~ 1988-08-15·현대
이명·자·호 金弘明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형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제주(濟州) 사람이다. 1927년 4월 9일 제주면 삼도리(三徒里)의 자기 집에서 고병희(高秉禧)·강기찬(姜箕贊)·조대수(趙大秀)와 함께 무정부주의 독립운동 노선의 비밀 독서회(讀書會)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매월 한 차례씩 모임을 갖고 사회과학 서적을 윤독하며 동지규합에 힘쓰는 한편, 1927년 10월 소비조합(消費組合)을 결성하여 일본상품불매운동을 벌여 나갔다. 1929년 5월 위 독서회 회원들은 우리계(宇利 )를 조직하였는데, 우리계는 우의돈목(友誼敦睦), 애경상문(哀慶相問), 생활향상을 표방하는 이면에 무정부주의적 이상사회의 건설을 목적으로 하였다. 특히 제주도의 전통사회에 바탕을 두고 무정부주의 사회를 실현코자 한 것이 주목되는 점이었는데, 그리하여 도청·은행·금융·조합·학교 등의 직원, 교원과 도내 유지들이 계원으로 대거 참여하였고 그들은 1929년 9월 도내 각 동리에 야학을 설립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하고 무정부주의사상을 선전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 사실이 일경에 포착됨으로써 그는 1930년 7월 다른 동지들과 함께 붙잡혀, 동년 12월 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1931년 7월 1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월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3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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