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浩溶
1905-02-17 ~ 1948-09-29·일제강점기
이명·자·호 김도원(金道元)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호용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1운동 당시 경상북도 영천군 신녕보통학교(新寧普通學校) 학생이었다. 3월 26일 학교 운동장에서 교사 박필환(朴弼煥)의 권유를 받고 ‘독립만세운동’을 추진했다. 4월 6일 신녕면(新寧面) 완전동(莞田洞) 노영수(盧永秀)의 집에 모여 나무에 태극기를 걸어놓고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밤에는 매양동(梅陽洞)에서 가두 만세시위를 벌였다. 일본 경찰은 시위군중들을 해산시키고자 무력 사용을 망설이지 않았다. 신녕경찰관주재소(新寧警察官駐在所) 경찰들에게 체포된 김호용은 대구지방법원(大邱地方法院) 재판에 회부되었다. 5월 1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석방되었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9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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