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濩
1864-12-19 ~ 1930-04-02·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金護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거창군 가북면의 김병직(金秉直)과 가조면의 어명준(魚命俊)은 3월 20일 장기리 장날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그날 정오 무렵이 되자 400~500명의 장꾼이 모여들었다. 두 사람이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장꾼들이 일제히 호응하면서 수천 군중이 삽시간에 시위행렬을 이루었다. 그들은 시위행렬의 선두에 서서 시장내외를 행진하면서 소리 높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장기시장에서 시위한 후 두 사람은 빠져나와 가북면의 헌병분견소로 가서 헌병대의 유리창과 기물을 파괴한 후, 의자에 앉아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시위주도자 5~6명을 포박하여 밤늦게 돌아온 헌병과 보조원은 이 광경에 놀라 김병직과 어명준을 폭행하자 두 사람도 이에 대항하여 난투가 벌어졌다. 두 사람은 반죽음이 되어 거창헌병분대로 압송되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인근의 인사들은 3월 22일 거창읍 장날에 거사하기로 하고 가조면·가북면을 비롯하여 각 면에 연락하여 주민을 동원하도록 하였다. 그들은 이 일을 수행할 위원으로 김호 등을 선출하였다. 3월 22일, 군중은 이른 아침부터 장기시장으로 모여 들었다. 오전 11시경 무려 수천 명의 군중이 장기의 만도정(晩島亭) 앞에서 6인을 중심으로 선언서 낭독식을 엄수한 후 행렬을 이루어 거창읍으로 향하였다. 시위행렬이 사포현(沙浦峴)에 이르렀을 때 거창헌병대와 용산 헌병분견대가 총을 발사하여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시위대는 해산되었다. 김호는 3월 22일 거창의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진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8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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