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弘九
1928-02-01 ~ 1997-03-22·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홍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안동(安東) 사람이다. 1944년 경북 안동농림학교(安東農林學校) 학생을 중심으로 결성된 비밀결사 명성회(明星會)의 단원으로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김홍구는 안동농림학교 임과(林科) 9회 출신으로 평소 뜻을 같이 하기로 한 학우들과 동지적 결합을 하고, 1944년 4월 비밀결사인 명성회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태평양전쟁의 전황을 주시하면서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였고, 조국 광복을 위한 독립운동의 방략으로 결정적 기회에 무장봉기를 일으키기로 뜻을 모았다. 그리고 이들은 이같은 뜻을 널리 알리기 위해 기관지『새벽』을 발간하여 안동농림학교를 비롯한 인근의 경주중학(慶州中學)·경북중학(慶北中學)·대구사범학교(大邱師範學校) 등의 학생층과 일반 지식인들에게 배포하며 항일사상을 고취하였다. 특히 김홍구 등은 1944년 11월 안동농림학교 내에 조직된 비밀결사 조선회복연구단과 연대를 이루며, 다음해인 1945년 2월 17일을 기해 무장봉기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거사를 위해 자금모집 및 동지규합에 진력하던 중, 일경에 사전 발각됨으로써 계획을 변경하여 3월 10일 소위 일본육군기념일에 맞춰 거사할 계획을 세워 갔으나 역시 사전 발각되어 붙잡히고 말았다. 그는 이 일로 옥고를 치르며 일경의 모진 고문을 받았으나 광복과 더불어 1945년 8월 17일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8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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