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花子
(1897)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화자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음력 10월 순천군 제현면(濟賢面) 문창리(文昌里)의 예수교 소속 여학교에서 결성된 비밀결사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이 조직은 같은 해 음력 8월 평양부(平壤府)에서 윤찬복(尹燦福) 등이 대한국민회 총무 박승명(朴承明)으로부터 독립운동을 위해 향촌 조직을 결성할 것을 권유받고 이후 신자들 가운데서 10여 명의 회원을 모집하여 결성한 것이었다. 기독교 계통의 대한국민회는 그 즈음 중국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할 목적으로 평양에서 결성된 항일비밀결사였다. 평양에 본부를 두고, 각 군(郡)에는 군회(郡會), 면(面)에는 향촌회(鄕村會)를 두어 인근으로 조직을 확장해갔다.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에서는 결성 직후 각 두서(頭書)를 통해 임무를 분담하였다. 회장은 윤찬복, 회계는 최복길과 정찬성이 맡았다. 또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원조를 목적으로 각 회원으로부터 4원씩 징수하여 그 중 1원은 향촌회 비용으로 충당하고 나머지 160원을 모았다. 1920년 음력 3월 23일 평양부 경창리(景昌里)에 있는 성경학당(聖經學堂) 기숙사에서 한영신(韓永信)의 소개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온 차경신(車敬信)에게 이를 교부하였다. 김화자는 부인향촌회의 회계계(會計係)에서 활동하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1921년 1월 동지들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8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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