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興鶴
1904-09-26 ~ 1920-05-30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흥학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 전라남도 해남군(海南郡)의 해남공립보통학교 1학년에 재학하던 김흥학은 평소 조국의 독립을 갈망하고 있었다. 같은 해 2월 29일 김흥학은 3.1운동 1주년을 이용하여 만세시위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심하였다. 자신의 집에서 백지 여러 장에 ‘대한독립 만세’, ‘조선독립 만세’라고 적었다. 이를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 군중들의 궐기를 촉구할 계획이었다. 마침 뜻을 함께 하는 안태석(安泰錫)·김형준(金亨俊)이 이 계획에 동참하였다. 이들은 즉시 격문을 해남읍내 일본인 상점 앞 등 눈에 잘 보이는 5개의 장소에 붙였다. 안태석과 김형준은 분필로 읍내 안기문(安基文)의 집 문짝 등에 ‘대한독립만세’라고 크게 적어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이로 인해 체포되어 1920년 3월 9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혹독한 고문으로 출옥한 지 2개월여 만에 순국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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