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喜久
1927-11-14 ~ 1945-03-17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희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남 통영(統營) 사람이다. 마산중학교 재학중인 1942년에 동기생 조우식(曺友植) 등과 함께 일제 식민교육정책을 비판하고 항일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은 국제정세를 관망하면서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고 다가온 독립에 대비하기 위해 우선 동지포섭에 힘을 쏟았다. 그리고 항일투쟁을 조직화하기 위해 1943년 겨울에 항일결사 경남학생건국위원회(慶南學生建國委員會)를 조직하였다. 동회는 연합군측에 정보를 제공한다는 계획아래 일본 해군 요새지인 마산·진해방면의 군사시설을 탐지하는 등 항일활동을 전개했다. 한편 그는 김해농업학교에 재학중이던 동향 친우 강부근과 뜻을 모아 김해농업학교 학생들을 동지로 포섭하고 경남학생건국위원회의 조직을 결성하였다. 그런데 1944년 6월에 김해농업학교의 조직이 일경에 발각됨으로써 동 조직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로써 그는 1944년 7월에 일경에 붙잡혔으며, 동년 8월 4일 퇴학처분을 당했다. 붙잡힌 후 동년 11월에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및 임시보안령 위반으로 징역 단기 2년, 장기 4년형을 선고받고 인천소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일경의 혹독한 고문으로 1945년 3월 7일에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1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