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熙淳
1909-12-26 ~ 미상·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희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30년부터 밀양청년동맹 위원으로 활동했다. 이어 1931년 7월 한봉삼(韓鳳三), 박경수(朴庚守) 등과 함께 밀양합동노동조합을 조직했다. 8월에는 노동조합 간부들과 빈부격차 등 사회문제의 해결책으로써 공산주의 사상을 연구를 하기로 했다. 이들은 9월 20일과 9월 30일 밀양읍(密陽邑) 삼문리(三門里) 밀양청년동맹회관에서 연구회 결성과 역할 분담에 대해 협의하고 조직 준비를 위해 움직이다가 일본 경찰에 발각됐다. 한편 같은 달에는 밀양합동노동조합 성내지부(城內支部) 결성대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됐다. 이 결성대회는 일본 경찰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개최돼 노동자 해고 및 임금 인하, 지부 규약 제정 등을 논의했다. 1932년 9월 12일에는 경상남도(慶尙南道) 창녕군(昌寧郡)에 본점을 둔 경남합동자동차주식회사 밀양지점의 조수 6명이 일으킨 동맹파업을 지원했다. 이들은 무고해고 반대, 식비 지급, 작업 중 부상자에 대한 회사의 책임있는 치료, 3개월마다 작업복 지급, 운전수 시험시 여비 지급 등을 주장했다. 김희순은 청년운동과 노동운동 활동을 하고, 1931년 10월 10일 연구회를 조직하기 위해 준비하다 체포됐다. 1931년 11월 25일 부산지방법원(釜山地方法院) 밀양지청(密陽支廳)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밀양청년동맹과 밀양합동노동조합 간부로 활동하던 중 밀양경찰서(密陽警察署)의 1932년 2월 16일부터 2월 27일까지의 대대적인 검거로 체포됐다. 50여 일 동안 취조를 받다가 4월 9일~11일 즈음 석방됐다. 이후 1934년에도 가택수색과 동시에 체포됐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20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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