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喜祚
1871-06-11 ~ 1930-01-17·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金喜祚, 金喜兆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희조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상남도 남해(南海) 사람이다. 1919년 4월 4일의 남해읍 장날을 이용하여 전개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4월 4일 김희조는 아침 일찍 장꾼으로 가장하여 남해읍 장터로 나아갔다. 장꾼이 1천여명으로 늘어난 오후 3시경, 시위군중은 약속된 신호에 따라 가슴에 숨겨 온 태극기를 꺼내 들고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는 시위군중과 함께 군청·우체국·학교·주재소에 뛰어들어 관리들을 끌어내어 독립만세를 외치게 하고, 경찰간부의 모자와 대검을 빼앗아 내동댕이쳤다. 주재소의 경찰들이 어쩔 줄 몰라 하자, 고현면(古縣面) 면장 김치관은 경찰 경비전화를 이용하여 사천(泗川)경찰서에 응원 요청을 하였다. 그는 이 사실도 모르고 날이 저물어 자진 해산하려 하다가, 김치관의 이같은 소행을 알고 고현면 이어리(伊於里)에 있는 김치관의 집을 파괴한 후 해산하였다. 그러나 그후 일제의 검속으로 체포되었으며, 이해 7월 15일 부산(釜山)지방법원 진주(晋州)지청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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