羅善道
미상 ~ (1923)·조선
이명·자·호 羅善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나선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3년 만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일본군의 만주출병에도 굴하지 않고 재기한 남북 만주 각지의 독립군들은 1921년 이후 새로운 전략을 필요로 하였다. 왜냐하면 종전처럼 각 지역별로 분산되고 그 이념마저도 분리되어서는 효과적인 독립전쟁을 수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1922년 2월에 이르러 남만주지역에서 활동하던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를 비롯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벽창의용대(碧昌義勇隊)·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광한단(光韓團)·보합단(輔合團) 등 각 군단의 대표들이 관전현(寬甸縣)에 모여 남만통일회의(南滿統一會議)를 개최하고 회의를 거듭하였다. 그 결과 1922년 2월에 이르러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가 조직되었다. 대한통군부가 성립된지 얼마 안 되어서 여기에 참여하지 못했던 독립운동단체들과 통합운동이 다시 전개되어, 1922년 8월에 남만한족통일회(南滿韓族統一會)가 개최된 결과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조직되어 남만주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단체로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이 단체는 곧 이념문제로 대한통의부와 의군부(義軍府)로 분리되었다. 이처럼 남만주 지역에서 독립운동단체들이 보다 활발한 대일투쟁을 위하여 서로 경쟁을 하고 있을 때인 1923년경, 만주 서간도 집안현(輯安縣)에서 나선도는 오정준(吳貞俊)·김병호(金秉浩)·김양무(金養武) 등과 함께 재만동포들의 지지하에 독립운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동현 태화보(泰和堡) 삼도구(三道溝) 대흥구(大興溝)에 거주하고 있던 동포 김여준(金呂俊)과 그의 아들 3인이 평북 삭주군(朔州郡)에 있는 일경에 밀고하고, 일경 백정(白井) 외 9명을 인도하여 동현 삼도구에 침입, 나선도 등 4인을 체포하게 하였다. 이에 나선도는 일경에 의해 김병호와 함께 압송되던 중 압록강에서 피살 순국하였다. 이 사건으로 주변의 주민들이 모두 공포에 떨게 되자, 독립운동단체의 소대장 서리 모(某)씨가 이 소식을 듣고 참사(參士) 몇 명을 급히 파견하여 민심을 위무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밀고자들과 친일파 김원현(金元鉉) 등을 체포하여 재만동포와 중국 농민들이 보는 가운데 그 죄목을 열거하고 사형에 처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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