羅時雲
미상 ~ 1896-02-29·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나시운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강원도 평창(平昌) 사람이다. 안승우(安承禹) 의진의 도영장(都領將)으로 충청도 일원에서 활약하였다. 1894년 발생한 청일전쟁이 일제의 승리로 끝나자 그들의 한국침략은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러시아, 독일, 프랑스의 삼국간섭 등의 국제정세와 친일세력의 약화 등에 불안을 느낀 일제는 이후 한국에서의 세력 만회를 위해 급기야 1895년 10월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친일 개화파를 사주하여 단발령과 복제개혁을 단행하였다. 이에 대항하여 이 시기 민중과 유생들은 의병을 일으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평소부터 총을 잘 쏘기로 소문나 있었던 나시운은 1896년 전 군수 안승우가 이끄는 의병진에 가담하여 도영장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충북 충주(忠州)에서 의병활동을 하던 중 병이 나서 잠시 고향에 머물렀다. 그는 병에서 회복되자 집안 사람들과 친지들이 모두 돌아가지 못하게 말렸지만, "이미 죽기로 다른 사람과 약속하였는데, 병을 빙자하고 집에 있으면 어찌 의리라 하겠는가"하면서 주위의 만류를 물리치고 다시 의병진에 들어가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가흥(佳興)전투에서 일본군의 소굴로 깊이 들어가 일본군 2인을 포살하는 등 크게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전투 중 적탄이 어깨를 관통하는 부상을 당하여 붙잡혔다. 붙잡힌 후 그는 칼로 살을 저미는 등 가혹한 고문을 당하는 과정에서도 당당히 꾸짖기를 "너는 일본사람이니, 우리가 건너가서 너를 해칠 까닭이 없는데, 어찌하여 화친한다는 명목을 빙자하고 저들 적신을 유인하여 음험하고 교활한 흉계를 꾸며 국모를 시해하고 임금을 겁박하여 우리나라를 오랑캐로 만들려 하느냐. 이러고도 벌을 받지 않으면 하늘의 이치가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싸움에 패하여 죽는 마당에 무슨 말을 하겠느냐" 하였다. 이 후 그는 곧바로 피살, 순국하였다. 그런데 그는 일본군을 가장 많이 죽였기 때문에 일제의 악감을 사서 다른 시체는 묻으면서 그의 시체만은 잔혹하게 불태워졌다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95
독립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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