羅信澤
1885-02-10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나신득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나신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남 맹산(孟山) 사람이다. 일제의 순사로 있다가 독립군이 된 인물이다. 영원(寧遠)경찰서 순사로 활동하다가 1920년 조신성(趙信聖)에게 감화되어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담하였다. 즉 조신성이 대한독립단 평남 총무 김봉규 외 1명과 함께 1920년 10월경 평남 맹산에 와서 안국정(安國汀)과 방임주(方壬柱)에게 조선독립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하였다. 그리고 그는 영원군에 가서 활동 중 체포되어 영원경찰서 유치장에 구류되었다. 그때 순사로 있던 나신택은 조신성의 권유로 기독교인 예준기와 더불어 독립사상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 나신택은 안국정·방임주·예준기·나병삼(羅炳三) 그리고 역시 순사 출신인 이운서(李雲瑞) 등과 함께 독립운동에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신택은 그들과 함께 순사를 죽이고 군자금을 모집한 후 맹산 선유봉(仙遊峰) 호랑이 굴에서 무기류를 준비하여 투쟁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나신택은 1921년 6월 20일 덕천(德川)에서 영원으로 보내는 공금수송마차를 습격하여 서씨 성의 순사를 사살하였다가 맹산에서 체포되었다. 지방법원에서 나병삼과 함께 사형을 받았으나, 1922년 3월 28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강도, 살인방조, 제령 제7호 위반, 장물 수수 등으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받고, 경성(京城) 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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