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萬春
(1888) ~ (1938)·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南바베르, 南滿聰, 파벨 니키포로비치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남만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남만춘은 1920년 1월 22일 결성된 러시아공산당 산하 이르쿠츠크위원회 한인부 회장으로 한인무장부대인 고려특립중대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21년 5월 이르쿠츠크에서 고려공산당 창립대회를 발의하고, 집행위원이 되어 그 해 가을 북경으로 파견되어 활동하였다. 동년(同年) 7월, 고려공산당 중앙위원회 겸 코민테른 파견대표자로 선출되어 코민테른 제3차 대회(1921. 6. 22~7. 12)에 참석, 한국대표단을 대신하여 '고려공산당의 보고' 연설을 하였다. 이후 이르쿠츠크에서 항일 신문 경세종(警世鐘)을 발간하여 동포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1922년 6월 경, 치타에 본부를 둔 암살단을 조직하고 활동하였다. 1922년 10월 베르흐네우진스크에서 열린 고려공산당 연합대회에 참석하여 상해파와의 연합을 모색하기도 했다. 같은 해 11월경, 독립당 측의 문창범·이동녕 등과 연립하여 노농독립정부를 조직하려고 시도하였다. 1923년 9월 25일, 일본 관동대지진을 독립의 기회로 여겨 블라디보스토크 노농정청으로부터 무기를 지급받고, 니콜리스크 등지의 한인을 소집하여 무장 투쟁을 준비하였다. 1924년 1월 중, 블라디보스토크와 그 부근에 거주하는 한인을 기반으로 고려공화국을 건설하자고 주장하였다. 같은 해 4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고려공산당 책임자회의에 출석하여 오르그뷰로(고려공산당 창립대회 준비위원회) 결성에 참여하고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6월에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제5회 국제공산당대회에 '재러시아한인자치제실시안'이 제출되자 고려부(高麗部)에서는 제반의 준비를 정비하였다. 1925년 모스크바에서 핍박받는 조선이라는 소책자를 발간하여 일제의 무력 지배를 통계 자료를 이용해 구체적으로 비판하였다. 1926년 중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정의부와 제휴를 위해 협의하였고, 1927년에는 8월 29일 '국치일'을 기해 서울에 파괴·암살단을 파견하려고 폭탄 등을 준비했다고 한다. 1929년 소련 공산당 숙청 때 출당 처분을 당한 남만춘은 1938년 5월 일제의 첩자 행위를 했다는 누명으로 체포되어 동년(同年) 10월 총살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