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秉麟
1903-12-28 ~ 미상·현대
이명·자·호 南秉極, 南炳洙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남병린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2년 11월 초순 일본 도쿄(東京)에 위치한 세이소쿠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에서 1년 간 유학 후, 니혼대학(東京大學)에서 2년간 재학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1925년 12월 초순 러시아 문학 연구를 위하여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기 위해 중국 훈춘을 거쳐 1926년 2월 상순 무렵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新韓村)에 도착하였다. 이후 니콜리스크 시외에 위치한 한경호(韓景浩)의 집에 머물며 공산학교에 입학하고자 시도하던 중, 고려공산당 간부 이동호(李東虎)를 만나 사회주의 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심하였다. 1926년 6월 상순 무렵 중국 훈춘으로 돌아와 북간도와 훈춘 지방 사회주의 운동 상황을 정리한 내용을 블라디보스토크의 이동호에게 보내기 위해 훈춘에 거주하고 있던 여봉구(呂鳳九)에게 의뢰하였다. 이어 6월 13일 경 연길현 용정촌(龍井村)으로 건너가 사립 대성학교(私立大成學校) 내에 위치한 김정국(金鼎國)의 거처에 머물며, 동만청년총연맹 간부 이인구(李麟求), 연구회 간부 최문호(崔文鎬) 등과 함께 러시아에 본부를 두고 있는 고려공산당과의 연락방법을 협의하였다. 이와 함께 북간도 지역의 사회주의 운동 현황을 정리한 정보를 이동호에게 보냈다. 1926년 11월 이러한 움직임을 탐지한 일본 간도총영사관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재류금지처분 2년을 받았다. 곧이어 1926년 11월 이른바 ‘태양회(太陽會)’사건이 벌어지자, 일본 간도총영사관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태양회는 함경북도(咸鏡北道) 길주군(吉州郡) 읍내에 본부를 두고, 명천군(明川郡)·성진군(城津郡)·단천군(端川郡) 등지에 집행위원을 배치하고 사회주의 운동을 전개한 비밀결사조직이다. 이로 인하여 1927년 3월 25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을 이유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1927년 12월 길주청년동맹 동해지부가 설치되자, 교양부장(敎養部長)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이듬해인 1928년 2월 14일 개최된 제3회 길주신간지회간사회(吉州新幹支會幹事會)에서 정치문화부 간사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21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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