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秉熙
1900-02-20 ~ 1959-12-15·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남병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남 함안(咸安) 사람이다. 1919년 3월 19일 경남 함안읍 장날에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고종황제의 인산에 참배 차, 서울에 올라갔다가, 독립선언식과 만세시위에 참가한 뒤 함안으로 돌아온 조한휘(趙漢輝)·이찬영(李讚榮) 등은 안지호(安知鎬)와 연락을 취하며, 3월 19일 함안읍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태극기를 제작하고 독립선언서를 다량 등사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19일 정오 경, 주도자들은 봉성동(鳳城洞)에 모인 수백명의 시위군중에게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나누어 준 뒤,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오후 2시가 되자 시위군중은 3천여 명으로 늘어났고, 시위군중은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주재소로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이때 출동한 마산경찰서와 현지 일경들이 무력으로 시위군증을 해산시키려고 하자, 이에 격노한 시위군중은 주재소로 들어가 공문서를 파기하고 건물을 파괴하였다. 더욱 사기가 오른 시위군중은 등기소·우체국·일본인 소학교를 시위행진하며 건물을 파괴하는 등 격렬한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긴급 출동한 마산 중포병대대의 총검을 앞세운 탄압으로 시위대는 해산하고 말았다. 그는 이와 같은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이해 5월 19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위 소요, 보안법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0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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