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盛熙
(1885)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南性熙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남성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경남 의령군(宜寧郡) 의령면(宜寧面) 읍내(邑內) 장날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의령군 읍내 시장에서는 1919년 3월 14일과 15일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를 주도한 인물은 구여순(具汝淳)ㆍ최정학(崔正學) 등이었다. 이들은 의령 읍내 장날인 3월 14일 오후 2시 서동(西洞) 공자묘 앞에서 선언서와 기(旗)를 나누어 주었다. 이어 남호섭(南灝燮)ㆍ이억근(李億根)ㆍ정봉균(鄭奉均)ㆍ정원익(鄭轅益) 등이 연설과 만세 선창으로 군중을 독려하자, 참가 인원은 3,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남성희도 이날 시장에서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불렀다. 그는 이튿날인 3월 15일에도 읍내 시장에서 노오용(盧五容)ㆍ최정학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6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5월을 받고 공소했지만, 7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4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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