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廷燮
1887-04-10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南庭燮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남정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3년 4월 구영필(具榮佖)과 함께 중국 서간도(西間島) 지역으로 이주한 이후, 봉천성(奉天省) 유하현(柳河縣)에 위치한 신흥학교의 경리(經理)로 활동하였다. 이와 함께 부민단(扶民團)에서 활동하는 한편, 1918년에는 동삼성한족생계회(東三省韓族生計會)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1919년 음력 1월 유하현 삼원보(三原浦)에서 개최된 부민단 간부회의에 참여하여 부민단을 한족회(韓族會)로 재편했다. 이때 한족회 재무사장에 선임되어,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가 확장할 때 현장실무감역을 맡아 활동했다. 1919년 12월 상하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의 명령에 따라, 행정사무를 맡은 한족회와 군사 사무를 담당한 군정부(軍政府)가 서로군정서로 개편되었다. 이때 재무사장에 임명되어 활동했다. 1922년에는 통화현(通化縣) 합니하(哈泥河)에서 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에 참여하여 지부 간사로 활동했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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