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明伊
(1883) ~ 1908-02-21·대한제국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노명이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의성(義城) 출신으로 박연백 부대(朴淵伯 部隊) 소속의 소부대를 이끌었다. 박연백은 의성군 춘산면(春山面) 효선리(孝仙里) 출신으로 1905년부터 1908년까지 의성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이다. 박연백은 1905년 을사늑약 직후 창의하여 1906년 7월 1일 일본군과의 교전에서 수십 명을 사살하는 등 의성·의흥(義興)·영천(永川)·청송(靑松)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나아가 1907년 10월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입암전투(立巖戰鬪)에 참여하였다가 패한 뒤 다시 의성지역으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박연백은 수하에 김반석(金盤石)·장학이(張學伊)·이신산(李新山) 등을 거느리고 의성·청송 일원에서 일본군 수비대에 대응하여 유격전을 감행하다가 1909년 11월 20일 의병부대를 해산하였다. 노명이는 일찍이 박연백 부대에 참가하여 수하에 의병 16명을 거느리고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2월 19일 노명이 등 4명의 의병들은 의성군 옥산면(玉山面)에서 군위수비대(軍威守備隊) 토벌대와 충돌하였는데, 3명은 탈출하고 노명이는 흉부에 중상을 입고 체포되었다. 노명이는 동년 2월 21일 오후 7시 사망·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06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