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明一
1926-02-28 ~ 1953-08-15·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노명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선산(善山) 사람이다. 1943년 7월∼1944년 6월까지『목양(牧羊)』이란 잡지를 제작배포하여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목양』이란 잡지가 만들어지게 된 것은 박태철(朴泰哲)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그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하면, 해외의 독립운동자들과 연락하여 독립을 실현키로 작정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1941년 11월 초순경 김은도(金恩道)를 찾아가, '내선일체(內鮮一體)는 실현 불가능하니 조선인들이 단결심을 키워 독립을 도모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고래(古來)의 언어와 풍속을 유지하여 독립을 해야한다'라고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들은 이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문학을 통해 민족의식의 앙양을 도모키로 하고 잡지를 발행하기로 결의하였다. 1943년 7월경 주식회사 조선기계제작소(朝鮮機械製作所)에 재직중이던 노명일과 그의 동료들인 임창빈(任昌彬)·이도열(李道烈) 등은 같은 직원 박태철로부터 각자 한글로 문학작품을 써서 책자로 만들자는 제안을 받고 적극 동참하기로 하였다. 그들은 책 제목을『목양』이라 이름 짓고, 민족의식이 강한 작품을 게재하여 책자를 만든 후 각자 윤독하며 민족의식을 함양하는 한편 주위의 가까운 인사들에게도 배포하였다. 그들은 1944년 6월 제2호의 원고를 모아 등사하려고 하던 중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이 일로 인하여 1944년 7월 4일 인천형무소에 구류되어 고초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8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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