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奉文
1895-09-01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노봉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북 선천(宣川) 사람이다. 1929년 3월 봉천성(奉天省) 신빈현(新賓縣) 하순자(下旬子)에서 국민부(國民府)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국민부는 1930년대 남만주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 단체이다. 이 단체는 1928년 9월부터 11월 사이에 있었던 3부통합회의가 실패한 후, 동년 12월 신민부(新民府) 군정파(軍政派), 정의부 탈퇴인사, 참의부(參議府) 주류세력들이 혁신의회(革新議會)와 유일독립당재만책진회를 조직하자, 정의부를 주축으로 하여 참의부 심용준파(沈龍俊派), 신민부 민정파(民政派) 등을 중심으로 하여 1929년 3월부터 새로운 군정부를 조직하기 위한 회의를 길림성(吉林省)에서 개최하고, 1929년 4월 1일 정의부·참의부·신민부의 해체를 선언하고, 새로이 조직한 단체이다. 노봉문이 참여한 국민부에서는 1929년 5월 28일 중앙집행위원회를 구성하고 중앙집행위원회의 위원을 결정하였는데, 당시 선임된 간부 명단을 보면 다음과 같다. 중앙집행위원장 현익철(玄益哲), 민사위원장 김이대(金履大), 경제위원장 장승언(張承彦), 외교위원장 최동오(崔東旿), 군사위원장 이 웅(李雄), 교육위원장 고이허(高而虛), 법무위원장 현정경(玄正卿), 교통위원장 김 돈(金敦), 중앙집행위원 김진호(金鎭浩)·심용준·이일세(李一世)·이동림(李東林)·황기룡(黃起龍)·고활신(高豁信), 사령관 이 웅, 1중대장 양세봉(梁世奉), 2중대장 윤 환(尹桓), 3중대장 이태형(李泰馨), 4중대장 김창헌(金昌憲), 5중대장 장철호(張喆鎬), 6중대장 안 홍(安鴻), 7중대장 차용륙(車龍陸), 8중대장 김보국(金保國), 중앙호위대장 문시영(文時映) 등이었다. 이 국민부에서 활동하던 노봉문은 1934년 정준신(鄭俊信)·박순복(朴順福) 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에게 체포되어 동년 1월 26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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