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千木
1897-05-10 ~ 1951-08-08·일제강점기
이명·자·호 盧千默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노천목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6일 김복현(金福鉉)·김강(金剛)·서정희(徐廷禧) 등은 숭일학교(崇一學校) 교사 최병준(崔丙浚), 수피아여학교(須彼亞女學校) 교사 박애순(朴愛順) 등과 협의하여 3월 10일 전남 광주(光州, 현재 광주광역시)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시위를 결행하기로 계획하고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는 등 사전 준비를 진행하였다. 3월 10일 오후 3시 반경, 주도자들은 계획에 따라 광주교(光州橋) 밑 천변에서 수백 명의 군중을 지휘하여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천변을 따라 냇가로 올라와 작은 시장으로 진출하여 시위대를 형성하였다. 이들은 이곳을 출발하여 서문통(西門通)을 경유하여 우편국 앞에 이르러 왼편으로 돌아 본정통(本町通)으로 행진하였다. 이때 누문리(樓門里) 방면으로부터 농업학교 학생 등 수백 명의 시위군중이 합세하여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내를 행진하였다. 그는 이날 시위대에 참가하여 군중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시위 도중 일본헌병대가 출동하여 해산명령을 내렸으나 시위대는 해산하지 않았다. 이에 헌병들은 실탄사격을 감행하며 무자비한 탄압에 나섰다. 이날의 시위로 일본 군경에 체포된 그는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그는 조선노동공제회(朝鮮勞動共濟會) 광주지회 외무부 간사로 피임되어 활동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5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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