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奎
1876-12-03 ~ 1947-11-27·일제강점기
이명·자·호 盧埰弼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노형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남 화순(和順) 사람이다. 1919년 3월 15일 조국현·조경환(曺景煥)·조기현(曺基賢)·조병렬(曺秉烈)·김세태(金世泰) 등 수십명과 함께 읍앞 갱미산(更美山) 마루로 올라가서 산위에 태극기를 높이 세우고 대한독립만세를 소리높여 외쳤다. 또 동년 3월 31일에도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그후 전 협(全協)·최익환(崔益煥) 등이 주도·조직한 조선독립대동단(朝鮮獨立大同團)에 가입한 그는 1920년 7월에는 조병렬(曺秉烈)·신유선(辛有善) 등과 함께 서울의 신덕영(申德永) 및 최양옥(崔養玉) 등과 연락해 가며 광주·화순·곡성·담양·보성 등지에서 임시정부의 자금 모집을 위한 활동을 폈다. 또한 동년 10월에도 여러 동지와 함께 대동단원(大同團員) 전 협(全協)과 연락하면서 전남 각지에서 임시정부(臨時政府) 군자금 모금을 위하여 온 힘을 기울였으나 동년 11월 5일에 광주(光州)에서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1921년 5월 31일에 소위 제령 7호 위반 및 공갈·가택침입·방화미수·총포화약류 취체령 위반으로 징역 5년형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21년 12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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