馬正德
(1888)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馬文官, 馬長命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마정덕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 중국 화룡현에서 야단에 가입하여 통신원으로 활동하던 중 동년 5월 28일 밀정 이남진을 처단하다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1920년 봄 화룡현(和龍縣)에서 김두일(金斗一)·장봉학(張鳳鶴) 등과 함께 야 단(野團)에 가입하여 단장 남홍윤(南鴻允)의 지휘 아래 김두일은 경호원, 장복학 은 경사원(警査員), 마정덕은 통신원으로 임명되어 일본 관헌의 밀정이 들어올 것을 경계하였다. 동년 5월 28일 함북 무산읍(茂山邑)의 사진사 이남진(李南津) 이 화룡현 선화사(善化社) 휘풍동(揮風洞) 오일창(吳一昌) 상점에 들리자, 이를 신문한 김두일은 이남진을 정탐꾼으로 판정하고 장봉학·마정덕과 이남진을 처 단할 것을 협의하였다. 그리하여 삼장면(三長面)으로 향한 이남진의 뒤를 쫓아 그날 저녁 기우제동(祈雨祭洞) 언덕길에서 이남진을 처단하였다. 1923년 9월 28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소위 살인·대정(大正)8년제령(制令)제7호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받고 공소하였다. 1924년 1월 2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0년을 받고 9년 2개월 19일 동안 옥고를 치르다 1932년 5월 31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2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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