孟希俊
(1886)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맹희준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3년 9월 천마산대(天摩山隊)의 후계조직인 독립청년단(獨立靑年團)에 참여하여 평북 희천(熙川)에서 경찰관주재소와 면사무소를 공격하고 일본인 순사를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천마산대는 3ㆍ1운동 직후 1919년 12월 최시흥(崔時興)ㆍ최지풍(崔志豊)ㆍ박응백(朴應伯) 등 대한제국 시절의 군인들이 조직한 항일무장단체이다. 대장 최시흥이 이끄는 500여 명의 단원이 화승총과 칼 등 재래식 무기로 무장한 뒤 천마산을 근거지로 일제의 경찰관주재소, 면사무소를 공격하였다. 최시흥의 부하인 최오산(崔午山)의 권유로 1922년 여름 무렵 조준용(趙俊龍) 등을 중심으로 독립청년단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했는데, 맹희준도 이 조직에 참여하였다. 1923년 9월 17, 18일과 9월 21일에 동지들과 함께 희천군 북면(北面) 명문동(明文洞) 창참경찰관주재소(倉站警察官駐在所), 북면사무소 등을 공격하고 일본인 순사를 처단하는 활동을 하였다. 이들은 먼저 전신과 교통을 단절시키고 각처에 불을 놓은 후 면사무소와 주재소 등을 공격하여 일제 경찰과 맹렬히 교전한 끝에, 일본인 순사 1명을 사살하고 경찰관주재소를 불태웠다. 맹희준은 1923년 12월 28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방화죄, 살인죄 등으로 징역 5년을 받고 공소했지만, 1924년 7월 1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25년 7월 15일 형집행정지로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4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