毛信永
1869-07-28 ~ 1919-03-31·대한제국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모신영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안북도 정주(定州) 사람이다. 1919년 3월 31일 정주읍 장날을 이용하여 일으킨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날 신안(新安)·동주(東州)·고현(高峴)면민들은 읍성 동문(邑城東門)으로, 이언(伊彦)·복달(復達)·아이포(阿耳浦) 면민들은 남문으로, 임해(臨海) 면민들은 서문으로 들어와서 시위군중이 2만 5천명이 넘는 대대적인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군중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벌이던 중, 출동한 일본 경찰·헌병과 충돌하였다. 이때 일본 헌병은 잔인하게도 선두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외치던 최석일(崔晳一)의 양팔을 잘라 죽이고, 최석일을 대신하여 태극기를 주워들고 만세를 외치던 최사걸(崔士傑)도 짐승을 죽이는데 사용하는 쇠갈구리로 배를 찌르는 만행을 자행하였다. 그러나 시위군중이 이같은 일제의 만행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 만세시위를 벌이자, 일제는 드디어 무차별 사격을 가하였다. 이때 선두에 있던 그는 흉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는데, 모원봉(毛元鳳)·모원규(毛元奎)와 함께 한 집안에서 3명이 순국하는 비운을 당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1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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