牟千年
(1869)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모천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일제가 1907년 고종을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였으며 8월에는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하면서 의병운동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심남일은 강무경(姜武景) 등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1907년 11월 1일 함평군 신광면(新光面)에서 기치를 올린 후 1909년까지 나주(羅州)·장성(長城)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함평군 영풍면(永豊面) 항동(項洞) 출신인 모천년은 1909년 8월 25일부터 10월 21일까지 심남일의 부장으로 활동하였고, 전해산의 부하였던 의병 약 300여 명을 이끌고 활동하기도 하였다. 11월 2일 함평에서 의병장 심남일이 체포되고 휘하의 강무경(姜武景)·박사화(朴士化)·이영준(李永俊) 등의 의병장이 체포될 때 함께 체포되었다. 1910년 3월 2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같은 해 칙령(勅令) 제325호에 의거하여 형 집행을 면제받았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7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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