牟治田
1894-12-22 ~ 1961-12-06·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모치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남 통영(統營) 사람이다. 1919년 3월 초 통영군 통영읍내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통영의 만세운동은 서울에 유학했던 학생들이 고향으로 내려와 3·1운동 소식을 전하면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이들 유학생들이 통영읍에 들어온 사실을 탐지한 통영경찰서에서는 엄중한 경계를 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 3월 13일 일본인 상점에서 미농백지 2,000매를 구입해 간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경들의 포위망은 더욱 좁혀져 갔다. 그러한 가운데 모치전을 비롯한 청년 18명은 3월 9일 비밀리에 마을 유지인 송정택 사랑방에 모여 만세의거를 협의한데 이어, 3월 12일 재차 모임을 갖고 선언서의 기초, 운동 방법 및 선언서 배포 등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나갔다. 3월 13일 오후 8시경, 이들은 통영면사무소와 산양면사무소(山陽面事務所)에서 등사판 2대를 비밀리에 빼내어 '동포에게 격(檄)하노라'는 격문 1,200매를 밤새워 인쇄하였다. 3월 14일 새벽 1시 30분 경, 인쇄를 마친 이들은 증거를 없애기 위해 사용한 등사판을 제자리에 갖다 놓으려다가 대기중인 일경에 붙잡히고 말았다. 이에 따라 만세운동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었고, 나머지 동지들도 오전 3시 경 전원이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이 일로 인해 1919년 5월 8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출판법으로 징역 6월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19년 6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6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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