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璟錄
1884-07-27 ~ 1919-11-01·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문경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북 남원(南原) 사람이다. 1919년 3월 2일 같은 천도교도이며 남원군 덕과면(德果面) 사율리(沙栗里)에 사는 황동주(黃東周)가 임실군(任實郡) 둔남면(屯南面) 오수리(獒樹里)의 천도교 전도사 이기동(李起東)으로부터 손병희(孫秉熙)외 32인이 연명한 독립선언서 2통을 전달받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붙여 취지를 알려 달라는 요청을 하자 이에 동의하고 그날밤에 기매면(己梅面) 계수리(桂壽里) 장귀연(張貴然)과 인화리(仁化里) 박봉석(朴鳳錫)의 집 등에 붙여 3·1독립운동의 취지와 내용이 곳곳에 전해지도록 활동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그 해 4월 24일 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전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후 옥고 여독으로 1919년 11월 1일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3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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