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光彩
(1861) ~ 1919-12-15·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문광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기도 양주(楊洲) 사람이다. 양주군 와부면 송촌리(瓦阜里 松村里)에 살고 있으면서 이 지역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정성(李正成)·김춘경(金春經)·김현모(金顯模)는 손병희(孫秉熙) 등이 독립선언을 하자 그 취지에 호응하여 김정하(金正夏)와 의논한 후 이 지역의 만세운동을 계획·추진하였다. 이들은 1919년 3월 15일 이른 아침에 동면 송촌리에서 면민 다수를 주도하여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덕소리(德沼里)로 향하여 시위행진을 벌였다. 그는 이 시위행렬에 적극 참여하여 독립만세를 부르다가 이정성·김춘경 등과 함께 일경에게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4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형을 선고받고 항고하였으나 경성복심법원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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