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碩祚
미상 ~ (1922)·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문석조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중국 관전현(寬甸縣)에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의 활동을 지원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순국(殉國)하였다. 대한독립단은 1919년 4월 15일 서간도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서 성립되었다. 국내에서 의병으로 활약하다 만주로 넘어 와 보약사(保約社)·향약계(鄕約契)·농무계(農務契)·포수단(砲手團) 등을 조직해 활동하고 있던 청장년들을 통합하여 성립한 단체였다. 삼원보의 본부와 함께 그 주변 서간도지역 및 국내의 각 도에 지단을 설치해 간도와 국내를 연계한 항일무장투쟁 루트를 만들었다. 대한독립단은 본부가 있는 만주지역 뿐만 아니라 국내 동포들로부터도 호응과 지원을 받았다. 그 결과 매일 수십 명의 청장년이 모여들어 1919년 중반에 약 700여 명의 독립군 대원을 확보하고 3만원의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대한독립단은 각 지역에 설치된 지단을 이용해 활발한 항일전을 치렀다. 지단 주변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비록 자신들이 독립군은 아니더라도 대한독립단 단원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했다. 지단이 있는 관전현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던 문석조도 대한독립단 단원은 아니었으나 단원 허일선(許日善)의 활동을 돕다가 일경에 붙잡혀 수난을 당하였다. 관전현 삼차자(三岔子)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대한독립단을 적극 지원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일제 경찰대는 1922년 7월 30일 이 지역을 급습하였다. 그리고 단원 허일선과 문석조 등 한인 4명을 붙잡아 압록강변으로 끌고 가 총살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09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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