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永信
1914-06-06 ~ (1959-03-05)·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문영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32년 6월 4일 전라남도 영암군(靈巖郡) 덕진면(德津面) 영보리(永保里)에서 최판옥(崔判玉)‧김판권(金判權) 등의 주도로, 영암리(永巖里)‧영보리‧노송리(老松里)‧장암리(場岩里)의 청년회원 70여 명이 야유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운암리(雲巖里)와 백계리(栢溪里)의 소작문제에 관한 시위운동을 결의했다. 이들은 깃발을 앞세우고 ‘노동가’를 부르며 대열을 지어 행진했다. 그 과정에서 부당한 방법으로 소작권을 얻은 신규 소작인들을 비판하는 등 시위 활동을 이어갔다. 그로 인하여 체포되어 1933년 9월 29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가택침입‧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등으로 벌금 30원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22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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