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允模
(1884)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문윤모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황해도 해주군(海州郡) 가좌면(茄佐面) 취야리(翠野里) 취야시장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3일 취야장터에서 천도교인과 기독교인이 합세하여 대규모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오후 2시경, 계획대로 6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태극기를 앞세우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큰 거리로 행진하였다. 시위행렬이 수천에 이르자, 행렬은 주재소 앞으로 향하였다. 주재소 앞에서 일부 청년들이 주재소 안으로 들어가 전화선을 끊고 기물을 파괴하자, 경찰들은 무차별 사격을 가하며 시위 군중을 해산시켰다. 일본 군경은 주동 인물로 보이는 최봉조(崔鳳祚) 등 50여 명을 체포하였다. 이 과정에서 붙잡힌 문윤모는 1919년 7월 24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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