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一石
1886-03-03 ~ 1945-02-23·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文星七, 豊川一石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문일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7년 군대 강제해산과 고종의 강제퇴위로 인해 후기 의병이 일어난 당시 문일석은 종이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경상북도(慶尙北道) 순흥군(順興郡)에 본진을 두고, 강원도(江原道)와 충청북도(忠淸北道) 일대에서 활약하던 김상한 의진에 투신해 좌익(左翼) 이춘삼, 도령장(都領長) 김성천으로 이어진 조직에서 의병투쟁을 했다. 1909년 음력 윤2월 13~14일 경상북도 문경군(聞慶郡) 동로면(東魯面) 벌천리(伐川里)와 산안리(山安里)에서 각각 1원 50전과 5원을 모금하고, 음력 3월 4일에는 충청북도 청풍군(淸風郡) 남면(南面) 원대리(院垈里)와 근남면(近南面) 지곡리(池谷里)에서 각각 18원 45전, 엽전 40냥과 필요 물품을 구하는 등 자금과 군수물자를 수급하는 활동을 했다. 4월 24일 단양군(丹陽郡) 조산면(造山面)에서 충주경찰서 청풍주재소 ‘토벌대’와의 전투에서 포로로 잡혔다. 이때 동지 4명은 사망하고 2명은 부상을 입었으며, 무기・탄환・화약・군자금 등을 빼앗겼다. 1909년 5월 15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강도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르다가 1912년 12월 23일 사면되었다. 정부는 202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4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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